스타트업 난세에 읽어보는 오자병법(吳子兵法) #5— 요적(料敵)편 : 고객의 본질에 대응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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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min readJan 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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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병법 얘기의 다섯번째 포스팅.

오자병법의 두번째 챕터는 요적(料敵), 즉 적의 특성을 분석하고 대응하기 위한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론적인 내용보다는 그 시기 오기가 있었던 환경에 대한 내용인데, 하나하나에 대한 부분보다는 이것이 현재의 환경으로 어떻게 대입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생각해야 화를 입지 않는다

위무후가 오기에게 위를 위협하고 있는 여섯 국가를 논하며 좋은 방책을 묻자, 오기는 우선 주군을 상찬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무릇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는 일은 전쟁이 터지기 전에 미리 경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 주군께서는 이러한 경각심을 갖고 계시니 화를 당하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B2B 스타트업의 많은 모순은 전통적인 B2B 비즈니스(그것이 SI든 뭐든)가 아닌, 2010년대에 급격하게 성장한 플랫폼 기업 환경의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낡아 보이는’, ‘무식해 보이는’, ‘할 것이 많은’ 어떤 시장에 뛰어들면서 생긴다. 이것은 이를테면 ‘좋으니까 쓰겠지’, ‘엑셀 같은 미개한 툴보다 나으니까’, ‘내가 보기엔 이런 게 문제니까’ 같은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사고방식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좋으면 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보기에 문제면 당연히 문제가 맞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우리의 물건이나 일이 과연 많은 대안 중 고객에게 선택받을 이유가 있는가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생각보다 금방 나오지 않는다. 또한 누군가에게 해답이었던 것은 누군가에게 해답이 아닐 수도 있다.

단가가 높아질수록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즉 다종다양한 변수들과 대결해야 하고, ‘곱게’ 처리되지 않는 수많은 문제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즉 B2B 스타트업이 개별 고객에게 돈을 많이 벌려고 할수록 더더욱 이른바 전쟁의 문제가 생겨나게 된다.

이 문제는 매우 돌발적일 뿐더러 아무리 해결하더라도 끝이 없다. 세상 모두를 영원히 만족시킬 수 있는 솔루션은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금의 시장 상황은 옛날처럼 아예 ROI를 무시하고 점유율 위주로 달리거나, 다수의 고객이 구성해 주는 현금흐름을 믿고 가기도 어려운 환경이므로 결국 개별 고객에 대한 고단가 비즈니스에 손을 대게 되는데, 더더욱 전쟁의 중요성이 커진다.

오기가 언급하듯이, 전쟁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일이고 사전에 경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B2B 스타트업의 환경으로 비유하면 고객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만남을 청해 발언을 듣고, 잠재적 경쟁자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일이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기본에 불과하다.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사실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들쑤셔 놓는 것이 무섭다’, ‘연락이 잘 안 된다’ 등의 이유로 그 일을 게을리하고, 그 결과 내부적으로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안이한 마인드가 생겨나며, 어느 순간 기습적인 형태로 전쟁이 터진다. 고객에 관련된 문제가 두려운 회사는 절대 살아남지 못한다.

이어, 오기는 위나라를 마주한 여섯개의 나라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해 나간다.

“제가 이제 여섯 나라의 실상을 하나씩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나라 군은 두터워 보이지만 견실하지 못합니다.
진나라 군은 통제되지 않고 제각기 싸웁니다.
초나라 군은 질서정연해 보이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연나라 군은 수비만 하고 후퇴하지 못합니다.
삼진(三晉)의 군은 체계는 잡혀 있지만 실전에 쓸모가 없습니다.”

이해관계자를 종적으로 분리하자

오기는 제나라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제나라의 국민들은 강직하고 국력도 강합니다. 그런데 군주와 신하들이 모두 교만하고 사치를 즐기며 백성들에게 소홀합니다. 정치는 관대한 편이지만 대우가 불공평합니다. 군대의 위아래가 서로 마음이 다르니 앞에서 보면 두터워 보이지만 뒤에서 보면 가볍습니다. 그래서 두터워 보이지만 견고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나라 군대를 격파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우리 군을 셋으로 나눠 좌우를 에워싸고, 주공은 후방을 위협하여 치고 들어가면 진열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오기의 제나라에 대한 판단은 현실 B2B 환경에서 ‘위에서 주도하는’ 환경에 우리가 놓여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문제에 가깝다. 즉 위에서 뭔가를 하라고 하는데, 아래에선 그런 게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 환경에서 ‘위에서 얘기를 했으니까 이 방향으로 가자고 아래를 설득한다’는 그림을 자주 생각하지만, 오기는 애초부터 그게 아니라 군을 분리해 포위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즉 애초부터 상대방을 한 마음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위는 위고 아래는 아래다. 둘 다 한꺼번에 잡아내려고 할 필요가 없고, 위에겐 그럴싸한 로드맵을 주고 아래와는 ‘우리 한번 진짜 니즈가 뭔지 얘기해 보자’는 접근을 하면 의외로 먹히는 경우가 많다. 결국 위는 아래에서 불만 안 나오고 자기가 증명할 수 있는 숫자만 좋아지면 땡이 아닌가? 그래서 회사가 일치단결한 상태인지 아닌지를 잘 살피고, 아래에서 딴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일이 복잡해지기 전에 아래의 니즈를 잘 살펴봐야 한다.

이해관계들을 횡적으로 분리하자

오기는 진나라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진나라 국민들은 강하고, 지형이 험하고, 정치는 엄하고, 상벌은 공정합니다. 그래서 국민들이 서로 양보할 줄을 모르고 모두가 공명심에 불타서 싸우려 합니다. 이래서 제가 ‘통제되지 않고 각기 싸운다’고 한 것입니다. 이를 격파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먼저 이익을 보여주어 적을 유인하면 이를 얻고자 장수의 지휘로부터 벗어날 것입니다. 이 틈을 타서 각각 격파하고 매복해 공격하면 틀림없이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환경은 흔히 상대방이 대단히 많고 철저한 KPI 기반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 제품이나 프로젝트가 이들 중 여럿의 서로 다른 KPI에 영향을 주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고객 측에서 총괄 PM을 정확히 할당해 간다면 문제가 안 되지만, 의외로 레거시 산업을 상대하다 보면 PM이 무엇의 약자인지도 모른다. 즉 아무나 다 얘기하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오기가 제안하는 것은 각개격파다. 대등한 각각과 서로 만나서 니즈들을 들어보고, 니즈들을 펼쳐놓고 우리 쪽 입맛대로 관계를 정리해 본 다음 당사자에게는 ‘이것을 정리해 오기 전에는 당신의 필요는 충족되지 않는다’고 하면 대충 해결된다는 것이다. 정리가 되면 되는대로 명확해서 좋고, 정리가 되지 않는다면 그걸 빌미삼아 우리에게 유리한 방식대로 찍어누를 수도 있다.

다만 이런 방식대로 뭔가를 하려면 사전에 이 각각을 파악해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항상 이런 대 고객 문제에서는 의외로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보다 우리가 뭘 알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경우에는 생각할 시간을 주지 말자

오기는 초나라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초나라는 땅이 넓지만 국민들의 성품이 여립니다. 이 때문에 외침이 잦아 정치가 어수선하여 백성들이 지쳐 있습니다. 이래서 ‘질서정연해 보이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한 것입니다. 초나라 군을 치는 방법은 진지를 기습해 기선을 제압하는 것입니다. 경무장으로 빠르게 치고 빠지면서 적을 지치고 피곤하게 하되, 결전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초나라 군대를 퇴각시킬 수 있습니다.”

이 상황도 의외로 자주 접할 수 있다. 고객 쪽 담당자가 딱히 우리 쪽과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오너쉽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냥 이 주제 자체가 피곤하다. 이런 경우에는 고객을 몰아쳐야 한다. 결국 담당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므로, 담당자가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하고 우리 쪽에서 먼저 전진해 압도하는 것이다.

이것의 목적은 고객 담당자 입에서 ‘적당히 하시면 된다’는 말/글을 얻어내고 그걸 기록하는 것에 있다. 우리 쪽 귀책사유를 만들지 않으면서 담당자를 의도적으로 가지고 노는 전술인데, 이렇게 하면 못해도 명분은 서고 잘 되면 우리 쪽에 유리한 조건으로 일을 치뤄낼 수 있다. 실제로 최근에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하나 눌렀다.

때로는 명확하게 전진하자

오기는 연나라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연나라 국민들은 고지식합니다. 백성들은 신중하며 용기를 중시하고 속임수를 잘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비만 하고 후퇴하지 못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를 격파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적과 만나면 압박하고, 적을 약올린 후 떨어집니다. 적이 공격해 오면 달아나고, 적이 물러나면 추격합니다. 이렇게 하면 적장은 우리의 의도를 의심하고, 병사들은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이 때 아군이 전차와 기병을 운용해 퇴로를 차단하면 적장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고객 중에서 드물게 있는, 고객 자체가 순진한 대신 맞고 틀리고에 대해서는 정확한 경우다. 가장 핵심은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다. 이런 고객은 정직하고 담당자 역시 정직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저지하고 잘 추격하는 것만으로도 코너에 몰리게 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고객이 어떻게 해도 일장일단이 있는 승부처까지만 간 다음 적당한 대의명분을 가지고 담당자에게 샘플을 주면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된다.

준비만으로 상대방을 압도하자

오기는 삼진(三晉, 중국 전국시대의 위/조/한)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삼진(三晉)의 조(趙)와 한(韓)은 중원에 있는 나라로 국민성이 온화합니다. 정치가 평온하고, 국민들은 전쟁에 염증을 느낍니다. 때문에 장수들의 권위와 녹봉이 낮으며, 병사들은 죽음을 무릅쓰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체계는 잡혀 있지만 실전에 쓸모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이는 강력한 진으로 적을 압박하고, 적이 공격해 오면 수비하며, 달아나면 추격해 적이 전투를 체념하게 하면 됩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지금 육국(六國)의 형세입니다.”

이와 같은 고객은 레거시 산업을 다루는 B2B일수록 많이 만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이런 고객을 상대로는 전술보다는 기본기의 영역이 중요하다. 우리는 상대방이 상상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보다 더 큰 프레임워크를 가지고 있는가?

의외로 고객과의 만남 시 중요한 것이 우리의 청사진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청사진이 고객의 막연한 희망보다 더 구체적이고 큰 것이라면 고객의 체계는 간단하게 무력화된다. 동시에 우리 쪽에서도 강력한 체계와 통찰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면, 즉 이런 체계에 익숙한 고객들이 던질 만한 의문들을 잘 해결해 주면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틀 안에 우리를 넣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고객과 우리의 파워 밸런스가 클라이언트와 업체가 아닌 컨설팅 받는 회사와 컨설턴트간의 관계가 된다. 즉 요구가 아니라 요청을 하게 되고, 우리 쪽에서는 훨씬 더 안정적인 형태로 고객과의 관계와 프로젝트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전문 대응 조직의 필요성

오기는 이와 함께 위나라가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한다.

“그러면 이제 우리 위(魏)는 이렇게 준비해야 합니다. 어느 부대든지 호랑이처럼 용맹한 병사도 있고, 솥을 들어올릴 만큼 힘이 센 병사도 있고, 걸음이 말보다 빠른 병사도 있고, 적의 군기를 빼앗고 적장을 사로잡을 만한 병사도 있습니다. 이러한 병사들을 우대해야 합니다. 왜냐면 그들이 군의 생명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 가운데 각종 병기를 잘 다루고, 체력이 뛰어나고, 체격이 건장하며, 싸울 의지가 대단한 자들은 반드시 직위를 높여주어야 싸움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들의 부모와 처자를 돌봐주고, 엄정한 상벌을 집행한다면 병사들은 진지를 끝까지 사수하게 될 것입니다. 주군께서 널리 헤아려 실천하신다면 두 배가 넘는 적도 거뜬히 격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기의 이 발언은 적의 상황에 맞춰 대응해야 하는 군의 특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인적 역량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가장 원론적인 차원에서, 군사적인 영역에 대응이 가능한 인원이 처음부터 존재해야 하고 이들이 군사적인 일을 처리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만 전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현실 B2B에서 이 부분은 흔히 영업-C/S-개발/상품 조직 사이에서 영업을 우대해 주는 이유처럼 표현되지만 실제로는 꽤 다르다. 오히려 이는 영업조직과 비영업조직 사이를 마치 (반푼이) 군대와 (반푼이) 정부처럼 만들어 놓기 쉽다. 실제로 오기의 사고방식은 좀 더 본진보다 고객에 충실한 형태의 전문 조직을 구성하고, 여기에 필요한 인원을 넣고 그 인원들을 전사가 존중하는 형태의 전문 대응조직을 만들자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이 부분은 매우 논쟁적(특히 스타트업 씬에서는)이다. 다만 어떤 면에선 고객 대응 문제야말로 워터폴이 아니라 변칙과 묘기가 자주 필요한 영역이다. 너무나 많은 회사에서 영업은 영업의 말만 하고, 프로덕트는 기획만 하고, 개발은 코드만 보는 기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고객을 여러 직군이 여러 방식으로 조금씩 요리해서 다듬는 것이 진짜 실력이고 이걸 못하면 B2C 비즈니스나 수익성 없는 B2B 비즈니스는 할 수 있어도 개별 고객을 상대로 이득을 보는 비즈니스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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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에서 데이터 블루칼라 역할을 하는 유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