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난세에 읽어보는 오자병법(吳子兵法) 도국편(圖國) #3 —고객의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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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in readJan 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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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병법 얘기의 세번째 포스팅도 도국(圖國, 나라를 그리다) 편이다. 오자는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 전쟁에 임하는 군대의 모습, 이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한다.

앞서 오기의 이야기들은 주로 국가라는 하나의 체제가 전쟁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벌어진 전쟁’을 다루는 방법, 즉 전쟁의 원인과 그 군대, 핵심적인 대처법에 대해서 설명한다.

고객과 맞붙게 되는 이유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다섯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명분을 다투는 것입니다.
둘째, 이익을 다투는 것입니다.
셋째, 증오가 누적된 것입니다.
넷째, 나라의 내부가 어지럽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나라에 기근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고객을 다루는 문제로 보면 작게는 다섯, 크게는 두 분류의 성격을 나타낸다. 명분, 이익, 증오는 고객 그 자체의 사고방식에 대한 것이다. 그에 비해 넷째와 다섯째는 고객과 우리 중 둘 중 하나 이상의 상황이 급변했다는 것을 말한다.

명분을 다툰다는 것은 현실에서의 B2B 스타트업에게 있어 그 회사의 솔루션, 혹은 어떤 결과물들이 막상 고객에게는 이것을 받아들일 충분한 명분을 주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즉, 안 팔리는 상품, 더 정확히는 ‘품의’의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B2B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과정에서 가장 경시되는 것이 품의에 대한 이해다. 품의를 해서 통과하려면 핵심 관련자에게 우리 제안을 내부적으로 진행해볼 수 있는 논리적 구조 — 즉 기획력을 제공하여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고객의 숨겨진 어떤 욕망이 있는데, 이 욕망을 우리 측에서 적절히 요리하여 필요성과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즉, B2B 스타트업의 비즈니스(특히 개별 고객에 대한 객단가가 높은 비즈니스)일수록 견적과 수행 문제 이전에 이것을 왜 도입하는가에 대한 컨설팅적 프로세스가 요구되고, 이 결과물을 무기삼아 고객 측 핵심 담당자의 내부 설득력을 증강시키는 과정이 반드시 나와야 한다.

컨설팅적 프로세스의 최종적 결과물은 정확히 둘 중 한 개 이상의 주제로 수렴한다. 고객이 돈을 더 벌게 해주는가? 아니면 고객이 돈을 아끼게 해주는가? 이익을 다툰다는 것은 적어도 여기에 대한 근본적인 논쟁(=명분)은 해소되었지만, 숫자적에서 확실치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여러 관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고객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만큼의 숫자적 이득을 제공할 수 있는가+동시에 우리는 이 고객에게 얼마만큼의 숫자적 이득을 취할 것인가에 대해서 계산하려는 노력을 자주 도외시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기본이고 고객에게 그 숫자를 줄 수 있느냐 아니냐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우리가 뭔가의 명분을 주었고 이익의 다툼에서 일정 부분 결론을 냈다면, 이제는 신의의 문제로 넘어간다. 증오가 누적되어 있다는 것은 고객 관계관리에 실패했다는 것을 말한다. 증오가 쌓인 쪽이 우리인가, 고객인가? 왜 증오가 쌓였는가? 보통 어느 한 쪽의 과실은 아니다. 그래서 이 경우는 일이 커져서 좋을 것이 없다.

나라의 내부가 어지럽거나 기근이 일어났다는 것은 B2B 스타트업의 내외부 환경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에 비유될 수 있다. 우선 고객단의 환경을 놓고 본다면, 보통 ‘핵심 이해관계자자 바뀌는 순간’이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큰 순간이고, ‘담당자가 바뀌는 순간’이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작은 순간이다. 기근이 일어났다는 것은 고객 쪽의 지불능력이 감소했다는 것을 말한다.

고객 측이 어지러워졌다면 우선 고객이 우리 회사, 혹은 우리 솔루션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일관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빠른 가이딩을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고객 측의 지불능력이 감소했다면, 우리 쪽이 제공하는 가치가 지불능력이 감소한 환경에 맞는지, 혹은 우리 쪽에서 거기에 맞는 옵션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결국 재보는 작업이 되고, 우리 쪽 단가와 제공범위를 동시에 낮추는 전략도 가능하겠지만 상대방의 비핵심 지출 범위에 대해서 우리 쪽이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 흡수하는 전략도 가능할 것이다.

사실 우리 쪽이 어지러워졌거나 기근이 들었다는 것은 보통 고객 측과 다시 명분과 이익을 다투거나 고객 측의 증오가 쌓이는 형태로 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별도로 다루지 않겠다.

고객의 근원적인 동기가 뭔가?

앞서 오기가 전쟁이 나는 기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면, 이번에는 그 상대방의 모습에 대해서 설명한다.

“또한, 전쟁에 임하는 군대에는 의병(義兵), 강병(強兵), 강병(剛兵), 폭병(暴兵), 역병(逆兵)이라는 다섯 형태가 있습니다.

폭정을 물리치고 나라를 혼란에서 구하려고 하는 군대를 ‘의병’이라 하고,
군사력만 믿고 정벌에 나선 군대를 ‘강병(強兵)’이라 하고,
분노로 인해 일으킨 군대를 ‘강병(剛兵)’이라 하고,
도의를 저버리고 이익만을 탐해서 나선 군대를 ‘폭병’이라 하고,
나라가 어지럽고 백성은 고통을 겪는데도 출전한 군대를 ‘역병’이라 합니다.”

이 다섯 형태의 군대는 각각 대처하는 법이 있습니다.

의병에게는 반드시 예(禮)로서 대해야 하고,
강병(強兵)에게는 겸손해야 하며,
강병(剛兵)에게는 말로서 설득해야 하고,
폭병은 속임수로 응수하며,
역병은 권모술수를 써서 상대해야 합니다."

이는 고객의 성격에 대한 일종의 프로파일링으로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각각을 내 경험에 비추어, 좀 더 신규 고객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보았다.

혁신을 하고 싶은 고객 : 의병(義兵)

의병과 비슷한 고객 환경은 주로 어떤 회사의 대표자, 혹은 핵심 리더가 자신들이 하는 업 그 자체를 크게 변화시키려 함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DX)이 될 수 있겠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이런 의병이 진짜 의병이냐인 것 같다. 회사 자체가 고객인 것이 아니라 회사의 어떤 관계자가 고객이라고 봐야 하는데, 그 고객이 생각하는 주제는 과연 그 회사의 전체적인 수준과 결에 맞는 것인가? 고객의 실제 니즈는 주주들을 상대하기 위한 업적 세우기일 수도 있고, 실제로는 숨겨진 결과(ex : 누군가의 비리나 사기를 잡는다)는 관점에서의 명분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의병에게 예로 대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이 환경에서 보면 명분에 맞는 무기들을 쥐어주어야 함을 말한다. 의병에게는 단순히 솔루션을 쓰게 만드는 것 이외에도 기획력을 꾸준히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의병이 정말로 쓰러뜨리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의병이 그 결과로 그리는 것은 무엇인가? 의병의 명분에 우리가 도움이 된다는 근거를 만들어 줄 수 있는가? 또는 의병의 우군이 될 수 있는가? 그렇게 하면 의병이 싸움에서 이기는가?

B2B 스타트업이 자주 휘말리는 참사 중 하나가 바로 이 의병에 대한 문제를 착각하는 것이다. 담당자가 그냥 실적이나 변명을 위해 뭔가 해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병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그런데 반대로 진짜 의병, 즉 희생을 치르고라도 전진할 능력이 있는 핵심 고위 이해관계자를 경시해서도 안 된다. 생각보다 이런 고객에게는 솔루션이 아니라 논리적 근거를 제공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단계적으로 회사의 핵심 인력들이 온도를 봐가면서 적절한 투자를 해야 한다. 아 기회다! 하고 올인하면 보통 일을 망친다.

돈이 많고 프라이드가 높은 고객 : 강병(強兵)

강병(強兵)은 B2B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쉽지 않은 고객이다. 우선 냉정하게 깨달아야 하는 점이 하나 있는데,이런 유형의 고객에게 우리 회사나 우리 솔루션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왜 의미가 없는가? 간단하다. 우리를 쓰지 않아도 이미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런 고객을 다루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우선 이 고객에게 있어 우리 회사나 솔루션이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이 솔루션이 의미가 없다면 우리는 일단 내려놔야 한다. 기존의 구도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미 성공을 했는데 왜 성공을 위한 솔루션이 필요한가?

그리고 고객이 생각하는 것이 뭔지-즉 이미 성공한 고객이 가진 훨씬 내밀한 니즈가 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이미 성공한 고객이 꿈꾸는 것은 보통 상장이나 M&A 같이 일개 솔루션의 영역이 아닌 빅 픽쳐이거나, 아니면 이 성공한 고객에게 끊임없이 생채기를 조금씩 내는 어떤 가려운 수준의 문제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솔루션을 사용하느냐 아니냐는 일단 접어두자. 그게 문제가 아니다. 이런 고객은 절대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되고(사실 대부분의 고객은 가르치면 안 되지만 이런 고객이 특히 그렇다), 오로지 이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듣고, 거기에 대한 우리의 ‘수행 방안’만 생각하면 된다. 그것이 겸손이다.

히트맨을 찾는 고객 : 강병(剛兵)

어떤 종류의 분노 때문에 나선 고객, 즉 강병(剛兵)을 보자. 이 사람들의 근원적인 분노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이들이 우리의 고객이라면, 이들 역시 자신들의 고객이 있을 것이다. 이들을 상대하거나 관리하기 어려울 때 분노할 수 있다. 아니면, 뭔가를 해야 하는데 뭔가가 없어서 치명상을 입은 상황일 수 있다. 아니면, 다른 라인에서 뭔가를 갖고 계속 시비를 거는 상황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위에서 대판 뭐라고 해서 그럴싸한 물건을 찾아 온 것일 수도 있다.

우선 두 가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첫번째는 이 사람들이 가진 분노에 대한 일종의 추임새다. 사실 그것이야 그네들 사정이고 심지어 이것이 정당하지 않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런 건 모르겠고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냐고 얘기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 분노가 얼마짜리 분노인지를 생각해야 하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 분노 자체에 대한 적절한 추임새가 없으면 당연히 문제가 될 것이다.

또다른 하나는 이 분노를 해소하기에 여의치 않을 때 발을 뺄 방법이다. 잘 생각해 보자. 어떤 문제 때문에 짜증이 났다. 그걸 해소하려고 뭔가를 가져왔다. 그런데 실패한다면? 너무 많은 걸 잃어버리게 된다. 즉 기회라고 들어갈 일이 아니라 이 기회를 둘러싼 리스크 판단이 굉장히 중요해진다. 과연 우리는 이들의 분노를 해소할 능력이 되는가?

만약 우리 솔루션의 약점이 많은 스타트업의 코드 덩어리가 그렇듯 신뢰성이라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동시에 우리에겐 분명히 100%의 신뢰성을 보장할 수 없는 어떤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냉정하게 생각하도록 고객을 설득할 필요가 있어진다.

우릴 이용해 남을 치려는 고객 : 폭병(暴兵)

폭병(暴兵), 즉 도리를 모르고 움직이는 고객에 대해서는 일단 계약을 하면 안 된다. 이유는 간단한데 무슨 회사 철학 그런 문제가 아니라 계약이 잘 실행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해관계자에 대해서 도리가 없는 고객이 과연 ‘을’에 불과한 우리에게 도리를 지켜줄까?

그래서 문제가 심플하다. 계약은 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이런 고객을 상대로 대 고객 문제에 대해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미수, 수행조건의 미협의, 무시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대응계획을 점검하는 용도로만 사용하자. 깊게 말릴수록 힘들다. 어차피 이런 고객은 망한다.

본업 수습을 못하는 고객 : 역병(逆兵)

본 비즈니스가 침몰하기 시작했는데 솔루션을 찾는 역병(逆兵)의 경우도 결론은 비슷하다. 우리가 만약 우리 솔루션의 효과를 입증해야 한다면 그건 고객이 성공한 그림 하에서 우리가 우리 지분을 찾아먹는 것일 뿐이고, 대부분의 솔루션은 애초에 본 비즈니스가 침몰하고 있는 고객을 애초에 구해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장사가 안 되는 걸 해결해 주는 ‘솔루션’은 사실상 없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본업이 안된다, 즉 실적이 급격하게 나빠져서 압박을 크게 받기 시작한 상태의 고객에게 필요한 건 솔루션이 아니라 칼잡이나 전략가에 가까울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솔루션에 대해서도 과한 요구를 하면서 골치아픈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당연히 커진다. 요건은 많고 물건은 먼저 받아야겠고 돈은 흠을 잡아 안 주는 패턴이다.

이런 케이스 역시 원래 하던 방식으로 매출을 내려고 하면 피곤함만 늘어난다. 차라리 이들에게 필요한 진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전문가나 알선해 주고, 전문가를 우군삼아 기회를 봐서 들어가는 편이 낫다. 바깥으로는 고객을 상대로 프랙티컬한 방안 위주의 얘기를 하는 그림이고 안으로는 사실 지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는, 처음부터 이미 우리 쪽 리소스를 쓸 필요가 없는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다.

안 되는 고객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브랜딩이 문제면 브랜딩을 잡으면 되고 마케팅이 문제면 마케팅을 잡으면 되고 상품이 문제면 상품을 바꾸면 된다. 이것들은 모두 다른 전문영역이지 딱히 코드 덩어리가 해결해 주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솔루션은 그런 개선 방향을 가속시키는 도구지 딱히 개선 방향 자체를 주는 게 아니니까, 골치아픈 상황에 빠지지 말고 적절하게 교전을 회피하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

좋은 흐름은 타고 나쁜 흐름에는 물러난다

오기의 분류를 생각해 보면 결국 심플하게 정리되는 것 같다.

고객과 고객의 본업이 견실하거나 가능성이 있다면 거기에 투자해 고객을 완성시킨다. 이미 성공해서 우리가 꼭 필요하지 않은 고객인데 취해야겠다면 고객만의 빅픽쳐나 고객만의 가려운 부분을 대신 해주는 에이전트가 된다. 니즈는 있는데 그것이 정치적이라면 적절한 교환비만 확보한다. 우리 것을 잔머리를 쓰는데 사용하려 한다면 우리 역시 잔머리의 대상이므로 가상적국으로나 활용하자. 우리 것은 보통 대세를 거스르지 못하므로 안되는 싸움을 우리 것으로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기가 이 얘기에서 우리 쪽의 ‘군대’나 ‘병사’를 얘기하지 않는다는 지점에 주목해 보자. 즉 실제로 이미 존재하는 솔루션, 즉 우리가 팔고 싶은 것은 다 부차적이다. 고객의 필요와 고객의 상태에 따라서 우리의 옵션을 놓고 생각해 보는 것이 기본이고 주어가 고객이지 우리는 아닌 것이다.

물론,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당연히 에이전시적인 방식으로 수렴하게 된다. 솔직히 B2B 스타트업(특히 단가가 좀 되는 물건을 파는 스타트업)은 절대 싸움을 안할 수가 없다. 다만 이걸 최소화해야 하는 거고, 결국 고객이란 적을 다루는 문제는 솔루션 바깥에서부터 생각해야 답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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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에서 데이터 블루칼라 역할을 하는 유령